10. 공백 4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에크리>로부터

리비도는 성적 본능이 아니다. (중략) 리비도가 성적인 것으로 물드는 것에 대해 프로이트는 리비도의 본성의 가장 내밀한 곳이 물든다고 단호하게 주장하는데, 그것은 공백-의-색이다. 갈라진 틈으로 들어오는 빛 속에 감도는 색 말이다. _자크 라캉, p.1005~1006 정신분석에서 리비도 개념은 흔히 성적 본능, 성충동의 대명사로 쓰인다. 분석을 통해서 무의식에 억압된 성적 본능을 발견하고 직접적으로나 승화적으로 욕망의 실현을 검토하도록 이끄는 실체적 가이드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라깡의 난해하기로 유명하며 또한 유일한 저서인 에서 발견되는 위 문장은 리비도의, 전혀 다른 시니피에를 말하고 있다. 문장 그대로 그것이 성적인 것으로 ‘물드는’ 어떤 것이라면, 물들여지기 이전의 어떤 상태로서의 리비도 개..

10. 공백 2023.05.07

공백, 에크리튀르, fort-da...... 매혹과 당혹 사이

정신분석이 되풀이해서는 증언하는 것은, 인간에게는 무엇인가가 중요한 것이 ‘거세’되고 ‘억압’되고 ‘상실’되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상실이란 무엇인가? 라깡에 따르면, 우리가 상실한 것은 ‘실재’다. 실재란 ‘the Real’ 곧 ‘무언가 진짜인 것’을 말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어떠어떠한 것, 우리 앞에 주어지는 특정한 사물(die Sache)이 아니다. 그것은 어떠어떠한 정신, 이념 또한 아닌데 실재는 우리가 알 수 있는 것, 우리의 지식의 영역 안에서 상징화될 수 있는 그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재는 쓰여지지 않기를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큰)사물(das Ding)’로서, ‘언제나 잃어버린 것으로만 재발견되는 대상’이다. 따라..

10. 공백 2023.05.07

공백, 非의미의 사수(전현정)

환상의 횡단 속에서 마주치는 공백 우리는 주이상스를 상실했다와 함께 주이상스를 억압하기 위해 인간은 문명을 발전시켰다는 가정은 라깡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대전제로 간주된다. 그러나 억압된 주이상스는 결코 사라지지 않고 다시 돌아온다. 어떻게 그것이 회귀하는가. 주이상스의 회귀는 우리 삶 속에 구멍을 통해 드러난다. 대표적으로 '증상' 이 그러하다. 정신분석과정에서 우리는 증상을 구성해내면서 그 의미를 파악하는데 골몰한다. 기존의 담화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 구멍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지 새로운 의미가 분출될 때까지 내담자는 말을 해야 한다. 라깡 정신분석이 기존의 상담과 다른 지점은 바로 그 지점이다. 그 구멍을 봉합하지 않는다는 것. 내담자의 고리타분한 서사가 끝이 나면, 기존의 언어가 들어설 자리가..

10. 공백 2023.05.07

공백, 진리의 장소이자 윤리의 장소(김서은)

공백은 무언가가 있었던 흔적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라져 버리고 없기에 거기에 무엇이 있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상실했다는 감각만을,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 부재의 감각만을 느낄 뿐이다. 상실을 대가로 주어진 문명은 우리가 결여된 존재임을 감추지만 공백은 때로는 공허함으로, 때로는 설명되지 않는 증상으로, 때로는 불안과 우울의 형태로 불현듯 우리를 찾아온다. 공백과 마주한 주체는 더 이상 세계가 제시하는 환상에 속지 않는, 진리와 마주한 자이다. 이곳에서 우리가 마주한 진리란 ‘진리 없음의 진리’이며, 동시에 이곳은 나에 대해 설명해 주던 언어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장소이다. 진정한 정신분석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나를 설명해 줄 언어가 없는 몰락의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타자의 언어가 멈춘 그..

10. 공백 2023.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