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5. 왜 쓰는가? 3

글쓰기라는 임상

이번에도 너무 늦게 글을 쓴다. 매번 글을 올리는 약속시간을 어기고 있다. 백지같이 아무것도 쓸 것이 없는 것 같은 막막함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한때는 나의 배설물이였던 글들, 그리고 cartel에 참여하면서 쓰게된 발제문들, 정신분석가에게 보낸 메일, 짧은 리뷰들, 그리고 수많은 업무페이퍼.. 사실 머리속에는 끊임없이 생각이 돌아간다. 그 생각들을 지면에 옮기는 작업을 하게되면 아무것도 쓸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된다. 머리 속의 쓰레기를 받아 적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무도 그 쓰레기 더미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발화하거나 글을 쓰지 않는 이상. 그 오물을 정화하는 방법 중에 하나는 글쓰기 행위를 통해서이다. 내 손은 오물을 거른다. (물론 배설의 글쓰기도 있지만,,,) 생각이 말이 ..

글쓰기, 죽음의 권리

“언어는 죽음을 가져오고, 죽음 가운데 보존되는 삶이다.”(모리스 블랑쇼, ‘문학 그리고 죽음에의 권리’) 블랑쇼에 따르면 우리는 “왜 글을 쓰는지 스스로에게 묻지 않고서도 분명 글을 쓸 수 있다.” 그리고 대개 우리가 무엇인가를 쓸 때 그것을 왜 쓰는지 묻지 않을 것이다. 다시 블랑쇼를 인용하면, “작가가 글을 쓰다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될 때, 글은 작가를 바라본다.” 쓰여지는, 잠시 후 곧 쓰여질 글은 하나의 물음이 된다. '지금 나는 무엇을 쓰는가? 그것이 무엇인가?'에서 시작해서 ‘왜 쓰는가?’ '왜 쓰려 하는가?' 그리고 ‘글쓰기란 무엇인가?’로 이어지는 행렬의 물음이 되는 것이다. 내가 실용적 목적에 맞추어진 기능적 글쓰기를 벗어나 있을 때, 그러니까 내가 '작가'일 때, 나는 글쓰기를 하나의..

분열적 글쓰기(김서은)

왜 쓰는가? ‘무엇을 쓰는가’가 아닌 ‘왜’에 대한 물음은 글쓰기의 이유를 묻는 것이다. 글을 쓰는 이유는 즐겁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나를 알기 위한 여정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또 때로는 정치적인 투쟁을 목적으로 할 때도 있다. 아마도 그것은 각각의 목적에 따라 즐겁기 위해 쓴 글이 되기도 하고 나를 알기 위해 쓴 글이 되기도 하고 정치적인 발언을 공론화시키기 위해 쓴 글이 될 것이다. 글쓰기에는 하나의 목적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이름 아래 귀속되지만 다양한 목적에 따라 각기의 글이 생산된다. 따라서 글쓰기는 분열적이다. 한 편의 글은 나의 전체를 대변하지 않고 그 뒤로 말해지지 않은 것을 남긴다. 글을 쓰면서 나는 계속해서 분열된다. 문장 하나가 덧붙여질 때마다 전체로서의 글은 조금씩 변형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