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7

조언 판단 충고 그리고 공감

모든 에너지가 소모되어 생활을 살아가고 집으로 돌아와 지쳐서 잠들기를 반복했더니 세월을 이야기듯 작업실에 먼지가 가득하다. 틈사이 비추인 햇살만큼 게으름도 한 몫한듯 나는 청소를 하려고 한다. 이미 벌어진 세월의 흔적을 치우려면 무거운 몸뚱이를 햇살만큼 움직여야한다. 나는 나에게 계속 말하는데 들리는 말도있고 들리지않는 말인 죄책감도 있다. 창문을 열고 공기청정기의 세기를 올리고 높은곳의 먼지를 먼저 털고 책상을 먼저 정리하고 바닥을 청소하며 자리를 찾지못한 물건들을 정리할것이다. 이 물건들에는 다 이유가 있다. 청소중 너무 많은 이유의 물건들에 한참을 침묵하고 앉아있다. 먼지를 털어내고 버리지 못했던 물건들도 정리해서 버렸더니 공간이 생겨난다. 내 마음에 공간이 있다면 비워야 채워질수 있는 그 어떤것에..

새로운 인생

정말 나는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었고, 그렇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발목이라도 잘라야 하나? 회전의자에 묶여 빙빙돌고 있는 것이 지금의 내 모습이다. 권태와 지겨움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역겨움...무거운 머리, 정지된 화면들, 밀려들어오는 '뻔한 말들'... 왜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었을까? 이게 증상이라면 나는 마지막 향유를 즐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향유의 시간을 질질 끌면서, 뱅뱅 도는 것이다. 새로운 인생은 증상도 없고, 건강함만 있는 한 낮의 시간이 될 것이고, 안정과 고요속에서 묵묵히 공부하며, 시간을 견디다 보면 진리를 통과하는 순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는 '나'를 잃어버린 것 같은 어떤 미련이 있다. 이 미련은 어쩌면 새로운 인생에 대한 나의 상상계적..

나를 만지지 말라

예수의 부활을 믿고 기다리던 사람은 누구보다 막달라 마리아였을 것이다. 이는 의심할 수 없는, 의심하지 말아야 할 사실이리라. 마리아가 부활한 예수를 만난다: ‘그가 진정 부활했는가?’ ‘그가 진짜 예수인가?’ 그녀는 그것을 알기 위해 죽기 바로 직전 커다란 창살이 관통했던 예수의 옆구리를 더듬어 보려 한다. 마리아는 알고 싶었다; ‘그가 그인지, 그가 그로서 다시 살아난 것인지’를 알고 싶었다. 그녀는 ‘그가 예수임을, 그가 부활했음을 증거할 확실한 것’을 ‘보고’ 싶었고 ‘알고’ 싶었고 ‘확인’하고 싶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져보고’ 싶었다. 하지만 예수가 말한다: “나를 만지지 마라! Noli me tangere!” 예수는 무엇을 만지지 말라고 했던 것일까. 단지 자신의 ‘상처’를 만지지 말라..

새로운 인생 (2) : 문학으로서의 삶

“쓴다는 것, 그것은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의 메아리가 되는 것이다.”(블랑쇼, ) 새 것에 대한 열정, ‘다시’ 새 것으로 돌아가는 열정, 나는 이것을 ‘은유의 열정’이라 이름 붙이고 싶다. 니체를 따라서 ‘문학으로서의 삶’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문학, 그것은 ‘시작의 열정’이기 때문이다. 블랑쇼는 말한다: “시는 시작이다.” 시 곧 문학은 ‘시작할 수 없는 것을 시작하기’다. 기존의 상징계가 보장하는 어떠한 주춧돌도 없이 ‘전적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이 바로 문학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불가능한 시작’으로부터 ‘열정과 사랑’이 태어난다. 바로 이것이 라깡적 의미의 은유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은유는 언제나 ‘시작’이고, 그 시작에서 ‘상실’과 ‘태어남’이 교차한다. 은유에 의해서 ..

새로운 인생 (1) : 참되지 않은 인생은 새롭지 않다!

두 가지 물음이 떠오른다:어떻게 새 삶이 가능한가, 그리고 새로운 삶이란 어떠한 것인가. ‘새로운 삶’, 이 기표는 우리가 삶에 대해서 그것이 새로울 수도 있고 또한 낡을 수도 있다고 믿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렇다, 우리는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다: 오늘의 나의 삶은 ‘낡은’ 것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지금-여기의 삶은 언제나-이미 낡은 것이거나 낡은 것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의심한다[걱정한다]. 삶은 낡아[늙어]간다. 더 냉혹한 인식에 따르면 오늘 나의 삶은 ‘이미’ 낡았다[충분히 늙어버렸다]. 삶은 멈추지 않고 낡아만 간다. 여기서 ‘낡음’의 이미지가 가리키는 것은 언제나 ‘죽음에 이르는 늙음’이며 어떠한 여정의 종결이다. 삶은 언제나 끝을 향해 가고 있는데, 나의 삶은 어쩌면 ‘아무..

새로운 인생

‘나’를 벗어나서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것이 정녕 가능한 일일까. 그러나 가능성의 여부를 떠나서 우리는 종종 다른 삶을 꿈꾼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이번 생’은 망했으니 ‘다음 생’을 기약하곤 하는데, 이 말은 곧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것은 지금의 ‘나’가 죽고 다시 태어남으로써 가능한 일임을 암시한다. 결국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문제는 새로운 나로 나아가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내가 바뀌지 않으면 삶은 끊임없이 같은 것을 반복할 테고 새로운 삶은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결국 우리는 또 다시 주체의 문제로 봉착했다. 처음에 던졌던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것은 가능할까라는 문제는, ‘나’를 벗어나는 일이 가능할까라는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나’로 변화하는 것이 가능한가라고 물음..

새로운 인생

비루했다고 여겨지는 혹은 그렇게 기억되는 나의 어린시절의 기억 속 삶에도 내일에 대한 희망은 있었다. 구체적인 대상이 되고자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지금의 현실이 아니기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지금을 지우는 방식으로 그시절의 희망은 그러했다. 자생력이 없던 시절의 소망을 바라는 어떤 사례일런지도 모를 일이다. 새로운 인생은 이후 오랜기간 삶의 명령과 같은것이였다. 혁신적일 아이디어로 직장생활에서 일찍 승진하기도 했으며 스트릿 문화에도 관심이 많아서 보드에 미쳐서 한동안의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구체적 대상이 없었다는것은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것을 인정받고 생존도 유지 할 수 있는 욕망의 대상을 꿈꾸는 남과 달라 보이기는 하지만 남과 그리 다르지 않은 꿈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의 삶이였다. 내몸이라는것에 매료되어서..

증상적 사랑

사랑은 모두에게 기본값이다 짧은 생각이지만 좀 털어놓는다면, 모든 것이 사랑의 문제로 나에게는 귀결된다. 세상의 많은 것들의 문제의 원인이 '욕망'이라면, 그 욕망의 기저는 '사랑'이다. 권력 역시 사랑할 것을 강제하는 힘의 형태 중 하나이다. 권력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사랑'을 요구한다. 물론 그 사랑은 '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의 종교라고 할 수 있는 '자본' 역시 자본을 통한 대타자 (대타자는 나를 지켜보는 막연한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우리의 고정관념, 이데올로기, 응시의 원인자이다) 의 사랑을 갈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돈에 대한 사랑은 대타자에 대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수많은 범죄의 원인은 사랑의 결핍에 결부되어 있는 것 같다. 뇌에 이상이..

2023/19. 사랑 2023.11.04

욕망하지 말라, 사랑하라

“왜 나는 그를 사랑했는가? 왜냐하면 그였기 때문이고 나였기 때문이다.”(몽테뉴) 욕망하지 말라, 사랑하라. 이 이상한 조합의 문구에 대해 나는 책임질 수 있을까. 지금 나는 ‘향유에 대한 욕망 vs 결여에 대한 사랑’이라는 구도에 사로잡혀 있다. 물론 이러한 구도가 결코 엄밀하지 않다는 것은 나 또한 잘 알고 있다. 욕망과 사랑이 그렇게 명백한 대립항으로서 구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순수한’ 욕망이라고 부르든 ‘순수한’ 사랑이라고 부르든 사랑과 욕망과 관련해서 무엇인가 결정적인 것, ‘사건적인’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필요성이 나에게는 더 다급한 요청으로 다가왔다. 물론 방금 내가 말한 것에서 중요한 것은 ‘순수한’이라는 기표가 아니라 ‘사건적인’이라는 기표 ..

2023/19. 사랑 2023.10.31

사랑

1 사랑은 사랑하지 않을것이다 그렇게 푸주한 아내의 꿈처럼 등이 시려워 돌아 누웠더니 가슴이 시린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주한의 아내의 꿈처럼 꿈 같은 사랑은 꿈에서 사랑한다 그런 사랑도 있다. 2 여기에 있었다. 흔적도 없어서 아무것도 증명 할 수 없지만 분명 여기에 있었다 손내밀어 잡은듯 했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잡힌것도 잡은것도 없다 결여의 환상 속에서 주어도 받아도 가진것도 얻은것도 없는 그러나 분명히 여기에 있었다. 3 말하는 이가있고 듣는이가 있다 말하는이는 말하는데 들으라고 말하지 않고 듣는이는 듣고있는데 듣는 방식으로 듣는다 오해속에서 사랑이 싹튼다

2023/19. 사랑 2023.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