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4. 영화 <아무도 모른다> 3

대타자의 불능

'아무도 모른다' 는 이 영화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몇년 전 내가 이 영화 감독의 영화를 봤다는 것이 기억이 났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감독의 '어느 가족'이라는 영화였다. 극장에서 많은 눈물을 흘렸었던 기억과 혈연관계가 아닌 이들이 모여 '서로의 가족'이 되어주었지만, 세상은 그들이 혈연관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가족으로 인정해 주지 않았다. 가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보살펴주는 그들과 달리, 친부모가 아이를 방치하는 경우는 어떠한가? 보살핌과 양육의 책무를 마다한 그들의 만행이 세상에 나타나기 전에는 그들은 어떠한 제재도 없이 그렇게 아이들을 버리기도, 학대하고 방임하기도 한다. 최근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은 유령아기들의 대한 보건복지부 전수조사가 있었다. 아직 조사중이지만, 예상대로 일부의 아기들이..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엄마에 의해 버려진 아이들이 우리 곁에, 바로 이웃 담장 너머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왜 아이들의 엄마가 갑자기 그들을 버리고 떠났는지, 엄마가 자신들이 아닌 다른 어떠한 것을 욕망해서 그렇게 했는지를 아이들은 모르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아무도 모른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조금은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모르는 것은, 아마도 모두가 ‘알았다면’ 외면하지 않았을, 외면할 수 없었을 (영화 속) 아이들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아무도 모른다'라는 기표가 그 자체로 영화 속 이야기를 '넘어서' 울려퍼지는 그치지 않을 메아리처럼 받아들여졌다. 누구든 (실상은 아마도 예외 없이) 때때로 자신의 고통, 슬픔 그리고 즐거움에 대해서 ‘아무도, 그 누구도 모른다’는..

잉여의 존재(김서은)

영화를 보고 가장 처음 들었던 생각은 이 아이들에 대해 쓰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쓰고 싶지 않다는 말로 이 글을 시작한다. 쓰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이 아이들에 대해 더 이상 덧붙일 말이 없다는 감각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각기 다른 아이 네 명을 낳은 어머니는 크리스마스 즈음에 오겠다더니 돌아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나름대로 생계를 꾸려 나가던 아이들이었지만 점차 유지되던 생활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제 12살이 된 첫째 아들 아키라가 어머니의 전 애인들을 찾아가 돈을 구걸해 보지만 지속 가능한 생계 수단은 아니다. 학교에 가야 할 나이에 학교에 있지 않은 아이를 보고도, 학교 안에 있는 야구부 코치는 그저 빈자리를 채울 존재로서만 아이를 바라볼 뿐이다. 장남인 아키라가 물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