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8. 대타자는 극복되어야 하는가 4

대타자의 복화술

대타자는 말을 하고 충동은 행위(acting out)를 한다. 말과 행위의 부딪힘. 알 수 없는 반복적 힘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순간. 그 부딪힘의 순간이 어쩌면 무의식 주체의 순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끊임없는 기표연쇄는 즉, 생각은 대타자의 말이라고 생각된다. 그 어떤 말도 새로운 말이 없기 때문이다. 대타자가 부여한 의미에 따라 우리는 말할 뿐이다. 대타자가 언어의 외피를 가진 일종의 환상이라면 충동은 언어를 무시한채 주체를 압박하는 힘이다. 대타자와 충동 두 측면 모두 외부의 소산이다. 대타자에 의한 거세와 충동에 의한 반복 이 두 가지로 인해 인간 주체는 소외당한다. 그러나 충동은 대타자의 결여를 공격하면서 주체를 잠금 해제시킨다. 나는 타자가 아니라, 몸을 가진 실재라는 비명으로 존재감을 드러..

대타자는 극복되어야 하는가(김서은)

이번 글의 주제는 대타자의 극복에 관한 것이다. '대타자는 극복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조금 변주시켜 본다면 '대타자는 극복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발전해갈 수 있다.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이렇게 질문을 바꿨을 때, 이 문제는 당위를 묻는 것에서 가능을 묻는 것으로 이행해 간다. 그러나 이 논의를 하기 전에 우리는 대타자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대타자에는 실체가 없으며 또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타자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일은 쉽지 않을 테지만 거칠게나마 그 윤곽을 그려 보아야 대타자의 극복에 관한 논의로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극복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극복을 논한다는 것은 공허한 일이 될 뿐이다. 대타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우리 눈앞에 있는 타자들과는 또 어떻게..

어처구니없게도.......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국에는....... 분석의 종결에 ‘주체의 죽음’이 있다. ‘나’의 죽음이 있다. 분석이란 일종의 ‘진리 찾기’다. 내담자로서 분석주체는 자기 삶의 진실 혹은 진리를 찾기 위해 분석실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분석 안에서 주체는 자신이 왜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는지, 왜 그 삶이 그렇게 고통스러웠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여전히 그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알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분석의 대전제는, 주체의 삶이 어떠한 속박 아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체가 그 속박으로 해방되기를 꿈꾼다는 것이다. 분석주체가, 분석이 일종의 해방의 진리를 찾는 과정이 될 것이라는 것에 이미 동의한 채로 정신분석 임상에 임하게 된다는 것이다. 분석을 통해 주체가 찾게 되는 진실이란 어떠한 ..

나르시시즘과 대타자의 극복에 대하여

살불살조.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인다. 부처의 이름도 허깨비와 같고 백천선지식의 천만가지 가르침도 남의 살림이다. 오로지 자기 안에서 건져올리고 지금 이순간 드러내야 한다. 경전 속 부처의 말이 아닌, 선어록의 조사 법문이 아닌, 자기의 몸과 마음과 행위로써 경험하고 체득해야 한다. 그것만이 자기 안에 본래 갖춰진 부처를 가린 허물을 벗겨내고 진아로써 현존하는 일이다. 말과 생각으로 지은 허구의 감옥을 깨뜨리고 일체 존재가 있는 그대로의 연기실상 그 자체임을 바로 보는 불교의 수행법으로 조사선, 간화선이 있다. 말과 생각이 끊어진 언어도단이라는 길 없는 길을 찾는 여정에서, 역설적이지만 언어는 깨달음의 수단이 된다. 깨달은 자, 법맥을 이어온 조사들의 선법문을 전하는 스승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