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26. 죄책감 3

이토록 이상한 나

“선한 것은 어떤 의미에서 절망적이다.”(카프카, 에서) 1. 죄책감에 대해서는 이렇게 묻게 된다: 우리는 금지된 쾌락을 즐겼기 때문에 [혹은 감히 그것을 즐기려 했기 때문에] 그 위반에 대한 가혹한 처벌을 받는 것일까, 아니면 스스로가 자신에게 너무 적은 쾌락만 남겨두었기에, 곧 ‘(충분히) 즐기지 못했기에’ 향유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자기 자신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것일까. 즐겨서 벌을 받는가 즐기지 못해서 벌을 받는가. 어쩌면 하나의 본질적 물음만이 남는 것인지 모른다. ‘죄와 쾌락’이라는 쌍의 문제 말이다. 죄와 쾌락이 언제나 교묘하게 한 몸을 이루면서 등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주이상스 곧 쾌락이 있는 곳에 죄가 있다’고 라깡은 말한다. 쾌락이 있는 곳에서 이미-항상 ‘금지’ 또한..

2024/26. 죄책감 2024.06.06

죄책감이 있는 곳에 주이상스가 있다(김서은)

죄책감이라는 감정은 우리를 괴롭힌다. 이것은 실제로 지은 죄에 달라붙어 우리에게 등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어떤 ‘의도’를 가진 것만으로도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물론 나의 죄가 아닌 아담으로부터 비롯된, 서구 기독교 문명에서 보여지는 인류 전체의 원죄에 대한 죄책감 역시 빼 놓을 수 없다. 그러나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라는 말이 있듯, 죄책감에는 일종의 쾌락이 동반된다. 죄책감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금지된 것을 향유하거나 욕망했기 때문이다. 법은 우리가 즐겨도 되는 쾌락과 즐겨서는 안 되는 쾌락을 구분하며, 법 너머의 금지된 것을 욕망하는 일에는 죄책감이 따른다. 예컨대 공부를 해야 하는 학생이 과도하게 게임이 주는 쾌락에 몰두하거나, 나를 희생하는 대..

2024/26. 죄책감 2024.05.13

죄 없는 죄책감

나는 분석을 시작하고 얼마 있지 않아 죄책감 같은 것은 없다고 했다. 어느 순간, 아마 30대에 들어서서 죄책감을 벗어던졌다고 느꼈다. 과연 이제 나는 죄책감이 없는가? 죄책감에 대한 나의 서사 20대에 가족에 대한 죄책감이 컸다.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죄책감을 큰 것은 자아의 비대함 때문이지 않을까. 내가 좀 더 노력했다면 다들 고생하며 살지 않을 텐데..스스로가 뭔가를 바꿀 수 있다는 과도한 환상 같은 것이다. 23세에는 학교를 잘 다니다가 돌연 의대에 가겠다고 노량진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특히 엄마에 대한 죄책감은 심했는데, 나는 어머니에게 언제나 빚을 진 자였다. 부모간의 불화와 사업실패에 따른 경제어려움, 그녀의 불행한 인생에 대한 보상을 내가 해주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

2024/26. 죄책감 2024.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