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5. 욕망과 쾌락 3

자해공갈의 향락

한때 내가 술을 마시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술을 마시면 적당히 즐기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았다. 어떤 '힘' 이 드러날 때까지 마셔야 직성이 풀렸다. 그 힘이 나를 부시고, 해쳐도 마침내 그 수준까지 도달해서 의식이 '0'으로 되어야만 했다. 나는 그런 순간이 왔다는 것을 의식이 눈치챈다 하더라도 개의치 않고, 오히려 빨리 그 순간을 넘어서야 했기 때문에 더 빨리, 더 많이 술이 나를 삼켜버리는데 전력을 다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분석을 통과하면서 그러한 '액팅아웃'의 순간들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때때로 그때가 그립다. 아니, 무의식이 그 시간들을 그리워 한다고 보는 것이 맞는 말인듯 하다.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넘어가는 순간들은 보통 생생하다. 시계를 보고, 거울 속에 풀어진 눈을 보..

욕망과 쾌락(김서은)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욕망과 쾌락을 교환 가능한 언어로서 사용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쾌락을 위해 욕망을 추구하며 욕망을 추구하다 보면 쾌락이 뒤따른다는 말이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정신분석에서 이야기하는 쾌락은 일반적인 의미로서의 쾌락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일상 속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쾌락도 분명 있겠지만, 정신분석은 그런 종류의 쾌락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정신분석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보다 심층적인 차원, 무의식적인 차원에서의 쾌락이다. 그렇다면 정신분석에서 욕망과 쾌락은 어떻게 다른가?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프로이트의 '쾌락 원칙'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프로이트는 정신적 기능의 원칙으로 쾌락 원칙과 현실 원칙을 제시한다. 쾌락 원칙의 속성은 항상성과 반복, 그리고 환상..

우리는 어떤 쾌락을 욕망하고 있는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쾌락일 것이다. 인간이 근원적으로 욕망하는 것이 바로 쾌락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은 언제나 쾌락에 대한 욕망이다. 적어도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그렇게 믿었다. ‘성욕’이라는 프로이트의 기표는 ‘성적 쾌락을 욕망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쾌락원칙’이라는 기표 또한 ‘인간이 본질적으로 쾌락을 추구한다’는 뜻으로 번역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렇듯 프로이트가 창안한 정신분석 초기의 주요 개념들은 하나같이 ‘쾌락’을 정밀하게 연구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태어난 것이다. 정신분석은 ‘쾌락학’이다. 인간의 심적 활동에서 ‘쾌락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다룬다’는 말이다.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인간은 ‘근원적으로 상실한’ 존재인데, 그 근원의 지점에서 인간이 상실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