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내가 술을 마시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술을 마시면 적당히 즐기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았다. 어떤 '힘' 이 드러날 때까지 마셔야 직성이 풀렸다. 그 힘이 나를 부시고, 해쳐도 마침내 그 수준까지 도달해서 의식이 '0'으로 되어야만 했다. 나는 그런 순간이 왔다는 것을 의식이 눈치챈다 하더라도 개의치 않고, 오히려 빨리 그 순간을 넘어서야 했기 때문에 더 빨리, 더 많이 술이 나를 삼켜버리는데 전력을 다했다. 건강상의 이유로, 분석을 통과하면서 그러한 '액팅아웃'의 순간들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때때로 그때가 그립다. 아니, 무의식이 그 시간들을 그리워 한다고 보는 것이 맞는 말인듯 하다.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넘어가는 순간들은 보통 생생하다. 시계를 보고, 거울 속에 풀어진 눈을 보고, 자신을 놓는 순간. 때로는 그 순간에 뭔가 날카로운 사고의 정점으로 치달았다는 기분이 든다. 때로는 갑자기 내면의 타자가 튀어나와 어쩌면 한 번쯤 스쳐지나간 사소하고 억압된 생각이 입으로 튀어나오고, 그것이 급기야는 나를 조종한다.
나는 거동을 잘 못하는 인형이 된다. 그런데, 한편으로 그것이 싫지만은 않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지만, 그런 수치심까지 걷어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다음날이면 나는 후회를 하고, 가슴을 치고, 초자아의 공격에 묵사발이 된다. 그런데 그렇게 바닥을 치는 것 역시도 그렇게 싫지 않은 것이다.어떻게 보면 내 삶이 긴장과 해소의 롤러코스터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어디까지가 욕망이고 어디까지가 쾌락이고 어디까지가 향락인가? 누가 즐겼는가?
프로이트의 쾌락원칙에 따르면 쾌락은 흥분의 감소, 이완이다. 어찌보면 털털해 보이는 '자아'를 꾸미고 사는데, 자주 술에 의존했던 지난 시간들을 생각해보면, 삶에 과도한 긴장이 내포되어 있었다. 내적 긴장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술을 마시다가, 죽음과 같은 '사고'를 꾸미는 '폭군같은 초자아'들의 난립들을 한편으로 반겼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것은 라깡이 말하는 나의 술마시는 행위은 '잉여향유'라고 볼 수 있을것 같다.
손쉽게 쾌락을 얻으려다가 '잉여향유'의 먹이로 자신을 제시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무의식적 주체의 욕망'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다. 이 욕망은 그저 '쾌락'하라는 주문을 내놓을 뿐이다. 의식적 주체의 고통과 무관하게 긴장을 해소를 넘어 자신의 췌장까지 먹어버려야만 하는 소멸, 죽음충동이 전면에 부각되는 시간이다. 분명 여기에 어떤 향락이 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술을 먹지 못할 때는 다른 방법과 도구를 써서 자신을 소모하였다. 일중독이 된다던가, 줄담배를 핀다던가, 심하게 운동을 한다던가, 곤경을 선택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자신을 항상 임계치까지 몰아부친다. 좋게 말하면 도전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자해공갈'이다. '자해공갈'인 것은 그것이 대타자의 시선을 경유한 잉여향유이기 때문이다. 그 잉여로운 고통마저도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욕망이 있는가?
쾌락과 향락(주이상스) 사이 진자 운동 속에 있을 뿐 아닌가?
욕망의 부재를 덮기 위한 한낱 '쇼'를 관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대상없는 욕망은 이렇게 쾌락과 향유사이를 왔다갔다하고, 대상이 있는 욕망은 끝없이 환유한다. 환상도 끝이 없다. 나는 두 번 빗금쳐진 것일까?
라깡 정신분석에서의 욕망은 팔루스의 필터링을 한번 거친 충동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상징계를 통과한 충동, 대상a이다. 우리가 정신분석을 하는 것은 그 충동을 둘러싼 환상에 균열을 냄으로써 주체적 '환상', 혹은 주체적인 잉여향유를 발명하기 위함이다. 아직 그 환상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추동력'은 있다. 술마시던 힘을 이제 공부하는데 많이 할애하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마구 엉망이 되고 싶다는 생각아닌 생각이 든다. 그래서 루틴으로 버틴다.
캭텔과 라깡과 선생님들과의 시간 속에서 언젠가는 달라져 있겠지.. 하는 낙관 속에서 버티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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