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 상실 3

상실의 발명

우리의 욕망은 상실에 대한 일종의 은유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결코 찾을 수 없는 것은 상실은 의미를 빠져나가기 때문인 것이다. 어떤 욕망을 추구한다해도 그 욕망의 속성은 텅비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욕망의 기표는 기표일 뿐 우리의 상실을 보상할 만한 충만함은 없기 때문이다. 잉여향유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피가 식는다. 열정의 연기를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정신분석의 애초의 가정인 " 우리는 잃어버렸다!" 그 침통함이 삶을 이어가게 하는 욕망의 기름이다. 도대체 무엇을 잃어버렸기에 나는 끊임없이 채우려고만 할까? 주이상스라는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무의식만 기억하고 있는 것, 그 것. 라깡 정신분석의 특이점인 양면성, 억압이 없으면 충동이 없다는 역설은 언어가 없으면 주이상스도 ..

2023/12. 상실 2023.06.14

무덤과 열정

인간만이 부재를 느낀다. 인간만이 상실한다. 인간만이 자신의 세계 안에 ‘없는 것’을 음각(陰刻, negative)해서 새겨놓는다. 그리고 그 상실한 대상을 욕망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동물은 충만한 세계를 살아간다. 동물은 부재를, 상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동물의 세계는 양각(陽刻, positive)의 세계다. 눈에 띄는 형식으로 있는 것[‘존재자’]만이 존재하기에 [그러한 존재자들하고만 상호작용하기에] 그 세계는 결코 부재로 움푹 파이지 않는다. 만약 어떤 하나의 사물-존재자가 그의 세계 안에서 사라진다 해도 동물에게는 그것이 문제시되지 않을 것인데, 그 이유는 동물이 그 부재를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실한 그 존재자는 곧바로 세계 안에서 실제로 ‘없어져 버리고’ 마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

2023/12. 상실 2023.06.11

상실의 일기

2023.05.27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상실한 대상은 안경이다. 물론 그전에도 수많은 물건을 잃어버렸다가 되찾거나 다른 물건으로 대체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억에 남지 않는 것은 처음이 될 수 없다. 아마 9살 때 즈음, 어릴 적부터 시력이 나빴던 내가 처음으로 안경을 맞추었던 때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눈이 나쁘지 않아서 앞자리에 앉으면 칠판이 보이는 정도였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착용했다가 벗었다가 반복했었다. 기억하기에 안경을 맞추는 데에 든 비용이 적지 않았으므로 엄마는 내게 안경을 절대 잃어버리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덜렁거리는 아이였던 나는 얼마 안 가 그 안경을 잃어버렸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가방 안에도, 책상 서랍에도, 집에도. 한 동안은 엄마한테 안경을 잃어버..

2023/12. 상실 2023.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