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7. 남근은 없다

그러므로, 남근은 없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23. 3. 17. 19:40

*불교와 정신분석을 연결하는 탐색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세션에 대한 내용은 사실과 허구가 섞여 있음을 밝힙니다.




1.
연기緣起.
인연因緣하여 일어남이다.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없으면 이것은 없다.
인에 연을 지어 일어난 것에 이름을 붙여 나, 또는 너라고 부른다.
인과 연의 마주침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대상은 존재할 수 없다. 나와 너의 마주침 없이 대상은 생겨나지 않으며, 대상이 있음으로 해서 나 또한 있다. 대상이라는 개념이 생성되면서 대상의 반대편에 나라는 개념이 생겨난다. 작다는 관념이 크다는 관념을 만든다. 관념이 제한한 프레임에서는 나를 확인하기 위해 대상을 필요로 한다. 욕망의 작동 이전에, '나'를 성립시키는 존재로서 대상은 요구된다. 상대항으로 연결된 것들의 일어남과 사라짐, 그리고 그 무한하며 혼돈한 반복, 이것이 불이不二이고 연기緣起이다. 거기에는 이름도 의미도 붙을 자리가 없다.
나와 대상 사이에는 마주침이 일어난 그 순간만이, 마주침 안에서 실재한다. 이후의 모든 것은 이름 붙인 것들을 둘러싼 상징의 재현들이다. 실재의 바깥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모든 순간들에, 진실에의 소외가 있다.

팔루스. 남근.
남성성, 아버지와 법, 지배권력, 거세불안, 욕망의 표징 등 무엇을 의미하건, 그것은 이미 남근이 아니다. 눈앞에 있다해도 그것은, 없다. 이유는 단 하나, 그것을 욕망하는 자 없이, 남근은 없기 때문이다. 남근이라는 물성으로, 혹은 상징화된 무엇으로 눈앞에 있더라도 그것은 실재할 수 없다. 눈앞의 그것은 남근이 아니다. 남근 혹은 어떤 표징의 이름일 뿐이다.
있다, 라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선  상대항의 존재 이전에도 그것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남근의 상대항으로서 그것을 욕망하는 자 없이, 남근은 존재하는가? 남근이 욕망하는 것이 아니고, 욕망하는 남근이 아니다. 욕망하는 자의 <상대항>으로서의 남근이다. 욕망하는 자 없이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실을 피하기 위해, 욕망되어져야 하는 운명에 처한 남근은 욕망을 생산한다. 욕망을 생산해야만 욕망하는 자가 나타난다. 남근이 되지 못한 남근은 남성성의 부재, 권력의 부재에 대한 상상적 공포에 압도되고, 가지지 못한 것들-남성성, 아버지와 법, 지배권력 등등-을 상상하는 사이, 존재의 조건항에는 '남근 되기'가 구조화된다. 남근이 되고자 하는 남근은 지금 이순간 남근으로 존재하고 있는가? 남근이 없기에 남근이 되고자 하며, 남근을  욕망하는 자를 현현시키기 위해 욕망을 생산하는 순환고리 속에서 '남근 되기'는 존재에 조건화된다.
남근이 지배를 표상하고자 할 때, 기꺼이 마주해 합일되고자 하는 피지배적 대상이 결부되지 않는 한, 남근적 의미는 성립할 수 없다. 힘과 지배, 혹은 숭배와 종속의 도착적 증상이 출현하는 것 또한 이 지점이다. 자신의 존재를 감지할 수 없는 존재는 극단에 위치함으로써 반대편의 극점에 대상을 불러오고서야 자신을 확인하고 안도한다.
대상이 없이 내가 존재할 수 없는 연기緣起의 진실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상대항 없이는 존립이 불가능하다는 진리를 받아들이는 일이 가능하다. 상대항을 포함하여 나를 구성할 수 있다. 아니,  그것은 가능태가 아니라 현실태이다. 이미 우리는 그렇게 존립하고 있다. 다만 분리를 상상하고 분리된 상태를 나로, 또는 대상으로 이름하였을 뿐이다. 나라고 이름한 것을 모든 상대항으로부터 분리할 때, 존재는 필연적으로 소외된다. 그러므로, 연기緣起는 불이不二이다. 연기緣起하여 불이不二인 존재의 진실 안에서, 남근은 없다.



2.
“그 이야기를 해야 해요. 왜 결합된 채로 있지 않으면 안되는지.”

진이 말한다. J는 굳은 표정이다. J는 분석가, 진은 분석자다. J는 라깡의 대상a를 표징한다. 진은 분석을 통해 닿고자 하는 진실, 찾고자 하는 진아이다. J는 모든 남자들과 모든 여자들의 이니셜이다. 진은 어머니의 성이다.
진에게 결합은 성욕이자 불안이며 근원의 합일에 대한 갈망의 언어다. 존재의 궁전, 자궁으로의 합일. 분리 이전. 아무래도 J는 첫번째와 두번째 그 이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궁극의 연결은 상상으로만 가능한 것일까.

다음 세션, J는 진의 손이 닿는 책장 한 켠에 책 한권을 눕혀 놓는다. J의 이니셜이 들어간 책이다. 그것은 서로에게 암묵적으로 J의 남근을 뜻하게 되었다. 방을 나갈 때, 진은 무의식의 이끌림으로 책을 세운다.
그 다음 세션, 책의 양 옆으로 흰 책 두 권이 틈없이 세워져 있다. 결합된 육체. 그것은 진을 기쁘게 하지 못한다. 진의 내면이 갈구하는 것은 진실의 담화다. 신체로서의, 그 일부인 신체기관으로서의 남근이 가져다 줄 수 있는 쾌락에의 가정은 쾌락의 있음과 동시에 쾌락의 없음이라는 진실을 데려온다. 있음은 없음을 담지하고 내포한다. 일어남과 사라짐, 모임과 흩어짐, 감각과 물질이 찰나에 연기緣起할 뿐인 진실이다.

J의 남근이 그 책장에, 진의 여근 속에 있었으나, 진이 기쁘지 않아서 그것은 의미를 잃는다. 있음도 없음도 아닌 무의미의 폐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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