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7. 꿈

정신분석가는 전이 속에서 꿈에 등장한다

라까니언 2023. 8. 28. 14:28

덩그러니 잘린 좀비 손이 내 발목을 잡고 있는 장면에서부터 꿈은 시작한다. 그것을 떼어낸 다음 창밖으로 던져 버렸는데, 이어서 내가 좀비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뒤따랐다. 주변에는 아직 좀비가 되지 않은 인간들이 함께 모여 있었다. 그들에게 내가 좀비로 변할 수도 있다고 말해야 할지 고민했던 것도 같다.

인간과 좀비는 커다란 창고 같은 공간에 함께 있었고 부실한 철조망만이 인간과 좀비가 섞이지 않도록 나눌 뿐이었다. 철조망 바깥에 있던 좀비들은 인간에게 공격성을 드러내지 않고 얌전히 있었다. 그러나 조만간 좀비들이 인간들을 향해 들이닥칠 예정이었다. 사실 여기서는 기억이 희미한데, 건물 밖에 있던 좀비가 들이닥칠 예정이었는지 아니면 철조망 바깥에 있던 좀비들이 인간들을 공격하기 시작할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위험이 곧 닥칠 거라는 사실은 나만 알고 있었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여기가 안전한 공간이라고 믿는 듯했다. 어쩌면 그들은 좀비 사태가 벌어진 줄 모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사람들에게 건물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말리던 중, 갑자기 한 인간 남자가 내 주변을 큰 원을 그렸다가 작은 원을 그렸다가 빙빙 돌면서 알고 있는 것을 말하라고 했다.

나는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알고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예상대로 좀비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혹은 얌전히 있던 좀비들이 날뛰었다. 남자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내 말을 듣기 시작했다. 그들이 내가 있는 철조망 안쪽으로 들어오도록 하는 와중에 좀비들이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여전히 이 부분에 대한 기억이 모호한데, 원래 한 공간 안에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좀비와 인간이 분리되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한 공간 안에 혼재되어 있다가 좀비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해서 사람들을 철조망 안으로 들어오게 했던 것인지, 아니면 건물 밖에 있던 좀비들이 들이닥친 것인지 정확하지 않다.

사람들과 나는 좀비가 안전한 철조망 안쪽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막았다. 와중에 철조망에 구멍이 생긴 것을 발견했다. 그 틈으로 좀비 한 마리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나는 좀비의 얼굴을 가격했고 내부를 지킬 수 있었다.

그때 좀비들이 득시글거리는 철조망 너머에 본가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보였다. 나는 고양이가 좀비에게 물려 좀비 고양이가 될까 봐 두려웠지만 다행히 좀비는 고양이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계속 걱정스러웠던 나는, 좀비가 얼굴을 들이밀었던 구멍을 통해 바깥에 있던 본가 고양이를 들어오게 한 뒤 꿈에서 깨어났다.

 

꿈에 대한 짧은 해석

이 꿈을 꾸었던 당시는 내가 정신분석을 받고 있던 때였다. 아마도 내 주변을 빙빙 돌면서 알고 있는 것을 말하라고 했던 남자는 나의 분석가였을 것이다. 물론 실제 정신분석가가 등장했던 것은 아니다. 나에게 알고 있는 것을 말하라고 하던 남자는, 최소한 꿈속에서는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꿈속의 표상은 언제나 그것이 아닌 방식으로서 등장한다. 

고질적인 좀비 꿈은 -이제는 고질적인 문제가 아니게 되었지만- 분석을 받던 당시에도 반복되던 것이었다. 좀비는 보통 벗어나고 싶은 가족들, 막연하게 두렵기만 한 미래로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꿈에서 좀비는 상담 상황으로부터 시선을 돌릴 수 있도록 해주는 미로로서 등장한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더 큰 실재와 마주하지 않기 위해 그 구멍을 좀비라는 상상적 대상이 등장하여 틀어막는다. 좀비에 시선을 돌림으로써 나는 여전히 모르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고 좀비의 난동과 함께 분석가는 장면 아래로 소멸해 버린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오로지 싸워야 할 유일한 적인 좀비로부터 나를, 고양이를, 사람들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만이 중요하다.

정신분석은 말-치료/이야기-치료이다. 그러나 나는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특히 누군가가 내가 말하기를 기대하는 상황에 처하면 발화하려는 순간 목구멍이 막히는 듯한 느낌을 종종 받는다. 내담자인 내가 말을 하지 않으면 정신분석은 진행이 되지 않는다. 말을 하기 위해 입을 벌렸다가 다무는 것이 반복되었고 말을 하지 못함 자체가 의식적으로 지각하지는 못하더라도 나를 꽤나 짓눌렀던 것 같다(사실 의식적으로도 그것은 내게 꽤나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러한 정신분석 상황에서 겪는 압박과 그것에서부터 벗어나기 위한 것으로서 좀비가 등장했다. 정신분석을 받기 이전에도 나는 '좀비 꿈을 꾼다'는 사실을 증상으로 받아들였고 내가 흔들리기를, 증상을 반복하기를 바라는 분석가의 욕망에 부응하기 위해 그에게 줄 선물로서 꿈을 꿈었다. 어쨌든 나는 매우 중요해 '보이는' 악몽, 좀비에 대해 이야기 함으로써 실제 분석 상황에서 말해야 할 것, 보다 중요한 것을 말하지 않고 빗겨갈 수 있었다. 좀비 꿈은 증상인 동시에 실재를 가리는 가림막이며 분석가를 위한 선물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분석가가 원하던 것은 증상이 보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보다 근원적인 큰사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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