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 4

소외

일반적인 차원에서 소외감은 삶의 공허감과 같은 말처럼 쓰인다. 주인의 반대말 처럼도 쓰인다.  인간은 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일까. 타자의 시선을 경유하여 몸을  느끼는 것일까. 소외는 일종의 정동이지, 실체가 아니다.  소외의 효과로서 우리는 '자아'를 찾겠다는 일념을 지니게 된다.  언어로 거세된 존재의 분열은 '진실게임'에 들어선 것이다.타자를 치는 나의 손이 갑자기 어색하게 느껴진다.  머리 중앙에 관중석에 앉아 지켜보는 나. 나의 시선은 카메라와 스크린의 두 개의 기능을 하고 있다. 이런 분열된 상황을 소외라고 싶다.

2024/29. 소외 2024.09.23

바람의 피부

그 지겹던 여름이 끝났다. 올 여름을 길고도 길었다. 태양은 피부의 진피층까지 쏘는 레이저 같았다. 날씨 때문일까. 뜨거운 우울증으로 앓았다.하루만에 공기는 달라졌지만, 아직은 폭염을 잊지 못한다. 그러나 곧 나는 이 무더웠던 여름은 잊을 것이고, 폭염에 대해서는 내년에도 똑같이 불평할 것이다. 내 오래된 이상한 아이디 '바람의 피부' 오늘 바람에 쾌적함이 느껴졌다. 나는 그 피부를 좋아한다. 도시의 바람은 다시 살만한 곳으로 만든다.

사랑에 관한 다섯 개의 마침표

사랑받는 자는 사랑하는 자의 커다란 대상a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깨진 거울의 균열속에 있다. 히스테리자의 사랑은 강박적이고, 강박증자의 사랑은 히스테리적이다. 사랑은 둘만의 라렁그를 즐기는 것이다. 사랑은 하나의 기표일 뿐, 우리는 그 의미를 빌려서는 안된다. 출처: https://studiountold.tistory.com/163 [Studio Untold:티스토리]

증상의 반복

내게 있어서 이제 반복이란 '증상의 반복'이다. 그것은 시간을 두고 반복된다. 인생 자체가 증상의 변주된 반복이다. 그것을 우리가 의식하지 못했을 뿐, 그런데 어느정도 나이가 들면 '어떤 것이 반복'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패턴을 읽어내려고 애쓰고, 그리고 찾아낸 패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골몰하면서, 그 답을 구하기 위해 우리는 '대타자'를 찾는다. 증상의 의미를 찾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증상의 원인을 찾는다고 해서 뭐가 또 달라질까? 그렇다면 우리는 포악한 증상에 사로잡혀 끝, 죽을 때까지 고통받아야 하는 것일까? 우리의 고통의 삭제를 위해 증상의 해석을 타자에게 구한다면, 그 해석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라깡정신분석에서는 내담자 스스로가 그 증상에 이름을 붙이는 것을 '윤리'로 본다. 비록 상..

2024/28. 반복 2024.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