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시간 공간
시간, 공간이 없이 그것 자체인 기억
기억속의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 자매들
욕망의 대상으로서 모호한
사랑했던 전부의 기억속의 여인들
사랑은 그랬다
사랑 때문에
마음이 감정이 피눈물 흘릴 때
마음은 시간과 공간의 노예임을 알게되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있음의 자리에서
누구나 생명으로 나고 시작했던
아무것도 없던 빈 공간
공백이라는 충동의 자리를 가정하고
있음의 기억을 지운다.
그리고
없음으로 부터 다시
기표는 상상을 통해서 무언가를 소환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서은선생님의 글에서는 나도 라깡을 만났는데
현정 선생님의 글에서는
'아비정전의 새가 있다'라는 현존을 보여 주셨네요.
승만 선생님의 글에서
아니다.
것이다.
문체가 재미있었습니다.
질문을 위한 질문인 것 같아서 질문은 저만의 즐거움으로 남겨 놓을 께요. 오히려 처음 댓글 올린 것이 날아간 것이 잘됐네요.
서은
Q. 시간과 공간이 없이 그것 자체인 기억과, 시간과 공간의 노예인 마음. 이 둘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현정
시간과 공간이 없는 기억이란, 우리에게 불현듯 찾아오는 대상 a와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기억 속 욕망의 대상들은 애도되지 않은 채 남아있어, 마음은 여전히 고통 속에 있다는 의미이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충동의 자리는 없음의 자리이므로 우리가 기억을 지운 것은 '상실 그 자체'가 아닐까요. '없음'의 기억을 지운 것은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반복 속에서 좋은 글이 나오실 듯합니다.
승만
Q. 기억에 왜 시공간이 없을까요? 기억이 파괴하는 것은 사물일 텐데 왜 시공이 파괴된 듯이 쓰셨을까요? 시공이란 ‘여기 있음’ 곧 현존을 강조하는 기표가 아닐까요? 선생님의 기표 사용에서 ‘불완전한 상실’이라는 테마를 생각하게 됩니다. 사랑과 기억 속의 여인들이 여전히 지금 여기의 시공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Q2. 생략, 누락 혹은 침묵의 주이상스(쾌락)을 즐기시는 것 같습니다. '침묵이 요란하다'는 시구가 떠오릅니다. '소리없는 아우성'이라는 시구도요. 선생님의 과묵한 문체는 요란함과 아우성을 억누르는 침묵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침묵이 요란한 것은 억누를 수 없는 것을 억누르기 때문입니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부인'의 메커니즘과 같죠.
만약 선생님의 침묵이 주이상스를 준다면 그 주이상스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그리고 말하지 못함과 말하지 않음은 같은 것일까요?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하자면 이러한 변주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답할 수없음 vs 답하지 않음
물을 수없음 vs 묻지 않음
미워할 수없음 vs 미워하지 않음
사랑할 수 없음(의 방식으로밖에 사랑할 수없음) vs 사랑하지 않음
억압 vs 억제
불가능성이 나를 덮침 vs 대상을 불가능성의 범주로 묶어둠
....... 이러한 연상들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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