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7

욕망과 쾌락(김서은)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욕망과 쾌락을 교환 가능한 언어로서 사용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쾌락을 위해 욕망을 추구하며 욕망을 추구하다 보면 쾌락이 뒤따른다는 말이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정신분석에서 이야기하는 쾌락은 일반적인 의미로서의 쾌락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일상 속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쾌락도 분명 있겠지만, 정신분석은 그런 종류의 쾌락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정신분석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보다 심층적인 차원, 무의식적인 차원에서의 쾌락이다. 그렇다면 정신분석에서 욕망과 쾌락은 어떻게 다른가?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프로이트의 '쾌락 원칙'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프로이트는 정신적 기능의 원칙으로 쾌락 원칙과 현실 원칙을 제시한다. 쾌락 원칙의 속성은 항상성과 반복, 그리고 환상..

우리는 어떤 쾌락을 욕망하고 있는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쾌락일 것이다. 인간이 근원적으로 욕망하는 것이 바로 쾌락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은 언제나 쾌락에 대한 욕망이다. 적어도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그렇게 믿었다. ‘성욕’이라는 프로이트의 기표는 ‘성적 쾌락을 욕망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쾌락원칙’이라는 기표 또한 ‘인간이 본질적으로 쾌락을 추구한다’는 뜻으로 번역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렇듯 프로이트가 창안한 정신분석 초기의 주요 개념들은 하나같이 ‘쾌락’을 정밀하게 연구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태어난 것이다. 정신분석은 ‘쾌락학’이다. 인간의 심적 활동에서 ‘쾌락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다룬다’는 말이다.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인간은 ‘근원적으로 상실한’ 존재인데, 그 근원의 지점에서 인간이 상실한 것..

당신이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신분석가는 내담자의 치료를 욕망하지 않는다. 상처는 벌려놓은 채로, 증상은 남아있다는 소리다. 정신분석이 끝나고 증상과 함께 살아가기가 가능해지지만, 새로운 증상의 출몰이 없다면 어쩔 수 없이 쾌락의 감산이 뒤따른다. '증상에의 향유'가 '공백에의 욕망'을 만나면 예전의 향유를 반복하기 어렵게 된다. . 환상 뒤에 '아무것도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담자는 다른 증상을 찾는다. 어쩌면 증상의 창의적 전개가 관건인지 모르겠다. 정신분석가의 공백의 주입을 통해 내담자의 서사는 그 '신화적 힘'을 잃게 된다. 원인과 결과의 논리들은 무의식의 논리에 종속된 것을 알게되면 내담자의 인생은 달라진다. 달라진 인생이 더 좋거나, 더 나쁘거나의 문제가 아니라 중요한 것은 '달라진다는 것'이다. 기존의 '자아'..

공의 매혹

내담자인 분석주체와 마주한 분석가는 대상a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 라깡학파 정신분석이 정신분석가에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여기서 대상a란 공백 곧 ‘아무것도 없음/아무것도 아닌 것’의 이름이다. 대상a는 언어-상징계의 쪽에서 보았을 때 ‘없음으로 있는 것’, ‘비어(있는 채로) 있음’이다. ‘공(空)’인 것이다. 분석가가 대상a의 자리에 있는다는 것은, 따라서 분석가가 분석주체에게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그 누구도 아닌 자(아무)’의 모습으로서 있는다는 것을 뜻한다. 분석가는 그러한 '없음'(무)을 욕망해야 한다. 묻지 않을 수 없다. 1. 분석가는 왜 '없음'을 욕망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욕망이란 것이 ‘무로부터’(ex nihlo) 태어났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라깡의 정신분석에서..

정신분석가의 욕망(김서은)

정신분석가의 욕망은 모호한 동시에 추상적이다. 그러나 정신분석가인 한 개인/주체의 욕망이 아니라 한 사람의 정신분석가가 무엇을 욕망하는가와 관련이 있음은 분명할 것이다. 이 글에서 나는 정신분석가의 욕망을 세 가지 층위로 분절하여 사유해 보고자 한다. 먼저 내담자와의 관계 속에서 정신분석가의 욕망(정신분석가와 공백), 정신분석가가 되고자 하는 욕망, 마지막으로 정신분석가를 양성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1. 정신분석가와 공백 정신분석가는 내담자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흔히 라깡 정신분석에서 이것을 공백을 향한 욕망이라고 이야기한다. 정신분석가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말인데, 바라는 것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보다 쉬운 표현을 사용하자면, 정신분석가는 내담자가 이야기하는 서사 속에서 채워지지 않는 빈 ..

욕망 뒤집기, 주체화

(올리신 글들에 조금 긴 댓글, 답글을 올려봅니다.) 1. 나 너 우리, 주체란 무엇인가? ‘나’와 ‘우리’, ‘나의 욕망’과 ‘우리의 욕망’....... 전현정 선생님이 내놓으신 기표들이 제게 큰 울림을 주는군요. 저 또한 ‘나인 것’과 ‘타자인 것’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나’와 ‘우리’의 구분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나, 너, 우리 모두가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타자’인 것만 같습니다. 결코 ‘내 것’ 같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모두 ‘기표들’ 곧 ‘이름들’에 불과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나’라는 기표가 결코 ‘진짜 나’를 가리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나=나’의 동일성이 흔들리거나 무너질 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우리는 무엇을 욕망하는가(김정철)

욕망에 대한 단상 욕망에 대한 경험이 쌓여가며 더 이상 쾌락하지 않은 상태를 경험한다. 불감증과 유사하게 삶에 대한 불감증 살아있지만 죽음과 유사한 느낌의 불감증은 삶에서 죽음을 경험하게 만들고 지금은 없지만 어딘가에 있을 쾌락에 대한 탐닉의 과정으로 나를 반복하게 만들고 있다. 기표와 충동 “우리는 충동, 성적 충동의 감정이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조형적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이들은 하나가 다른 하나의 자리 를 대체할 수 있으며, 하나가 다른 하나의 강렬도를 취할 수 있다. 하나의 만족이 현실에 의해 거절될 때에 다른 하나의 만족 이 거절된 것에 대한 온전한 보상적 만족을 제공할 수 있다. 이들은 하나가 다른 하나에 대해서 마치 조직망처럼, 마치 액체로 채워진 수로처럼 기능한다.” - 라깡인간학 백..

욕망의 한계

우리는 무엇을 욕망하는가? 여기서 '우리' 라는 테두리는 정신분석을 공부하는 '우리'일수도 있을 것이고, 인간 일반을 일컫는 '우리'일수도 있을것이다. 인간 일반이라면, 앞서 김서은 분석가가 내놓은 대타자라 볼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욕망'은 '우리의 욕망'과 다른가? 나의 욕망도 결국 우리의 욕망의 방향과 다르지 않았다. '인간의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나의 욕망에서 타자의 욕망을 빼면 남는 욕망이 있기나 한 것인가? 욕망의 원인은 곧 주이상스는 개별적이지만, 우리의 일반적인 욕망의 대상은 한정되어 있다. 사물에서 사람까지 우리는 대상을 옮겨가며 욕망을 추구한다. 물론 '성공', '사랑', '돈' 이라는 추상적인 기표 역시 욕망의 대상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욕망의 원인이 무엇..

우리는 무엇을 욕망하는가(김서은) / 1월 28일 내용 추가

자크 라캉 직업 소설가 소속 - 사이트 -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 정신분석에, 그리고 라깡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격언처럼 들어봤을 법한 말이다.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 우리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이것은 일견 남들 사는 대로 산다는 말을 멋지게 포장한 것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한편으로는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남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좋은 직업을 갖기를 원하며 남들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물건을 욕망하여 구입한다. 또는 우리가 무엇을 욕망해야 할지 모를 때에는 남들이 무엇을 욕망하는가를 염탐하기도 한다. 요즘 유행하는 트렌드가 무엇인지, 핫한 장소는 무엇인지, 무엇을 가져야 하는지. 우리의 욕망을 결정하기 힘들 때 우리는 다른 ..

욕망이 묻는다,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당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가? 누군가가 나에게 묻는다. 곧바로 아니면 잠시 후에, 나는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이상하게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모르겠다. 나는 내가 진짜로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갑자기 알 수 없어진다. 우울해진다. 정신분석에서 모든 장애는 욕망의 장애다. 때때로 우리는 바로 그 장애에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 다시 묻게 된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데 이때의 '당신'은 내가 아니라 '내가 아닌 다른 누구' 그리고 내가 이러한 질문을 하게 됨으로써 나에 대해 강력한 권한을 가지게 될 '다른 누구',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대타자'다. 왜 나 자신의 욕망에 관해서 모르는데 그에 대한 질문을 '당신'에게 하게 되는 것일까?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라는 라깡의 명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