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 18

주체에서 주체로(김서은)

나의 오랜 친구는 여행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는 매일매일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서울을 떠나 먼 타지에 정착했다. 그러나 친구는 실망을 느낄 수밖에 없었는데, 그곳이 삶의 터전이 되고 난 후에는 더 이상 여행지가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행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먼 곳까지 갔다가 '여기'로 되돌아오는 것. 우리는 여기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지금-여기'를 일시적으로 떠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런 의미에서 정신분석은 일종의 정신적 여행이다. '나'에서 '나'로 떠나는 여행이며 출발점도 종착지도 나라는 주체이다. 이 여행의 목적은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나 라깡 정신분석에서의 진리가 과학적 진리나 형이상학적인 진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정..

2024/25. 여행 2024.03.13

정신분석가는 전이 속에서 꿈에 등장한다

덩그러니 잘린 좀비 손이 내 발목을 잡고 있는 장면에서부터 꿈은 시작한다. 그것을 떼어낸 다음 창밖으로 던져 버렸는데, 이어서 내가 좀비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뒤따랐다. 주변에는 아직 좀비가 되지 않은 인간들이 함께 모여 있었다. 그들에게 내가 좀비로 변할 수도 있다고 말해야 할지 고민했던 것도 같다. 인간과 좀비는 커다란 창고 같은 공간에 함께 있었고 부실한 철조망만이 인간과 좀비가 섞이지 않도록 나눌 뿐이었다. 철조망 바깥에 있던 좀비들은 인간에게 공격성을 드러내지 않고 얌전히 있었다. 그러나 조만간 좀비들이 인간들을 향해 들이닥칠 예정이었다. 사실 여기서는 기억이 희미한데, 건물 밖에 있던 좀비가 들이닥칠 예정이었는지 아니면 철조망 바깥에 있던 좀비들이 인간들을 공격하기 시작할 것이었는지는 잘..

2023/17. 꿈 2023.08.28

MBTI와 주체의 소멸(김서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필수 관문처럼 받게 되는 질문이 있다. 바로 '당신의 MBTI는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이다. 이 질문을 주고받는 것은 이제 상대방을 알기 위해 빠지지 않는 절차인 것처럼 보인다. 나의 MBTI, 그리고 내가 마주하고 있는 타자의 MBTI를 알고 싶다는 욕망의 이면에는 내가 누구인지,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싶다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 MBTI에는 네 가지 항목이 있고 이것이 각각 조합되어 만들어진 16개의 범주가 사람을 구분해 낸다. 각각의 유형은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설명되어 있다. 그렇기에 MBTI만 알면 내가 누구인지,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아주 뚜렷하고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2023/16. MBTI 2023.08.20

질투(김서은)

1. 자아의 탄생 “나는 내 눈으로 보았다. 유아도 질투심에 사로잡힌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그는 아직 말할 줄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창백한 얼굴과 독기를 품은 시선으로 젖을 먹는 형제를 바라본다”. 그리하여 그는 거울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상황(아이가 바라본다), 감정적 반응(창백한) 그리고 원초적 좌절의 이미지의 재활성화(독기를 품은 시선) – 이것들은 가장 초기의 공격성의 심리적·육체적 좌표들이다 – 를 유년기 초기의 유아 infans(말하기 이전)와 영원히 연결시킨다. 에크리, 정신분석에서의 공격성 138p 라깡은 에크리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문장을 인용하면서 유아 시절의 질투를 설명한다. 이 단계에서의 공격성은 거울 단계를 통한 자아 이미지의 형성과 관련이 있는데, 거울 단계를 통한 자아의 이미..

2023/11. 질투 2023.05.21

공백, 진리의 장소이자 윤리의 장소(김서은)

공백은 무언가가 있었던 흔적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라져 버리고 없기에 거기에 무엇이 있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상실했다는 감각만을,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 부재의 감각만을 느낄 뿐이다. 상실을 대가로 주어진 문명은 우리가 결여된 존재임을 감추지만 공백은 때로는 공허함으로, 때로는 설명되지 않는 증상으로, 때로는 불안과 우울의 형태로 불현듯 우리를 찾아온다. 공백과 마주한 주체는 더 이상 세계가 제시하는 환상에 속지 않는, 진리와 마주한 자이다. 이곳에서 우리가 마주한 진리란 ‘진리 없음의 진리’이며, 동시에 이곳은 나에 대해 설명해 주던 언어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장소이다. 진정한 정신분석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나를 설명해 줄 언어가 없는 몰락의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타자의 언어가 멈춘 그..

2023/10. 공백 2023.05.06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 / 시선과 응시(김서은)

바야흐로 볼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이다. 유튜브를 비롯하여 넷플릭스, 왓챠와 같이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하는 서비스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으며 비슷비슷한 콘텐츠들이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점점 확대된 인간의 보고자 하는 욕망은 단순한 볼거리를 즐기는 수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범죄의 수준으로까지 넘어가기도 한다. 공공 화장실에 불법 카메라를 설치하는 일은 여전히 문제가 되는 사안이며 N번방 사건은 물론, 최근에는 남성 BJ가 수많은 시청자들 앞에서 잠든 (혹은 술과 약을 먹여 잠이 들도록 만든)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기사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타인의 성행위, 은밀한 사생활을 몰래 엿보고 거기서 쾌락을 느끼는 자에 대해 흔히 정신 의학에서는 관음증이라는 진단명을 붙이고 성도착의 한 종류로 분류한다...

대타자는 극복되어야 하는가(김서은)

이번 글의 주제는 대타자의 극복에 관한 것이다. '대타자는 극복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조금 변주시켜 본다면 '대타자는 극복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발전해갈 수 있다.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이렇게 질문을 바꿨을 때, 이 문제는 당위를 묻는 것에서 가능을 묻는 것으로 이행해 간다. 그러나 이 논의를 하기 전에 우리는 대타자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대타자에는 실체가 없으며 또한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타자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일은 쉽지 않을 테지만 거칠게나마 그 윤곽을 그려 보아야 대타자의 극복에 관한 논의로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극복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극복을 논한다는 것은 공허한 일이 될 뿐이다. 대타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우리 눈앞에 있는 타자들과는 또 어떻게..

나르시시즘과 대타자의 극복에 대하여

살불살조.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인다. 부처의 이름도 허깨비와 같고 백천선지식의 천만가지 가르침도 남의 살림이다. 오로지 자기 안에서 건져올리고 지금 이순간 드러내야 한다. 경전 속 부처의 말이 아닌, 선어록의 조사 법문이 아닌, 자기의 몸과 마음과 행위로써 경험하고 체득해야 한다. 그것만이 자기 안에 본래 갖춰진 부처를 가린 허물을 벗겨내고 진아로써 현존하는 일이다. 말과 생각으로 지은 허구의 감옥을 깨뜨리고 일체 존재가 있는 그대로의 연기실상 그 자체임을 바로 보는 불교의 수행법으로 조사선, 간화선이 있다. 말과 생각이 끊어진 언어도단이라는 길 없는 길을 찾는 여정에서, 역설적이지만 언어는 깨달음의 수단이 된다. 깨달은 자, 법맥을 이어온 조사들의 선법문을 전하는 스승과..

남근은 없다(김서은)

'남근, 팔루스'라는 개념은 정신분석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 동시에 많은 오해를 낳기도 하는 개념이다.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시기 남아는 거세위협을, 여아는 남근 선망을 겪게 된다고 말한다. 거세위협과 남근 선망은 이후 남성과 여성이 사회적인 성 역할을 따름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남자아이는 아버지로부터 어머니를 포기하지 않으면 거세당할 것이라는 위협을 받고 어머니를 포기하게 되는데, 그 대신 어머니를 소유하고 있는 아버지처럼 되고자 한다. 아버지처럼 되면 미래에 어머니와 같은 여성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남아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사회화가 된다. 반면 여자 아이는 자신에게 남근이 없음을, 자신이 보다 더 결여되어 있음을, 더 ..

그러므로, 남근은 없다

*불교와 정신분석을 연결하는 탐색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세션에 대한 내용은 사실과 허구가 섞여 있음을 밝힙니다. 1. 연기緣起. 인연因緣하여 일어남이다.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없으면 이것은 없다. 인에 연을 지어 일어난 것에 이름을 붙여 나, 또는 너라고 부른다. 인과 연의 마주침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대상은 존재할 수 없다. 나와 너의 마주침 없이 대상은 생겨나지 않으며, 대상이 있음으로 해서 나 또한 있다. 대상이라는 개념이 생성되면서 대상의 반대편에 나라는 개념이 생겨난다. 작다는 관념이 크다는 관념을 만든다. 관념이 제한한 프레임에서는 나를 확인하기 위해 대상을 필요로 한다. 욕망의 작동 이전에, '나'를 성립시키는 존재로서 대상은 요구된다. 상대항으로 연결된 것들의 일어남과 ..